글수 8
풍수지리사상의 전개과정
(1) 고대의 풍수지리사상
① 한국 풍수사상의 기원
한국 풍수사상의 기원에 대한 설은 크게 양분화 되는데 하나는 한국 자체발생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으로부터의 도입설이다.
먼저 자체풍수발생설은 상고시대의 한 민족도 타민족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의 생활상의 요구로부터 적당한 토지의 선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당나라에서 풍수설이 도입되기 전에 이미 풍수설이 존재하였다고 주장한다.
중국으로부터의 도입설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로 나누어 말한다.
현존하는 문헌 중 풍수지리설의 존재를 입증하는 최초의 기록인 숭복사비문을 근거로 하여 풍수사상이 신라통일 이후 당과의 문화적 교류가 빈번하던 때에 비로소 전래된 것으로 보았다.
한국 풍수사상의 전설적인 원조는 옥룡자 도선(827-898 A.D)을 꼽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 풍수설이 도입된 것으로 본다.
② 이론적 특성
1. 중국에서 도입된 풍수사상이 고래(古來)의 한민족 전통사상과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2. 고대의 한국 풍수사상은 풍수사상과 도참사상이 각기 나름대로의 길을 가며 달랐다는 점이다.
3. 고대의 한국 풍수사상은 제일 먼저 사찰 입지의 양기풍수론에서 출발하여 선승들의 부도지 선정 및 왕릉의 조영과 관련된 음택풍수까지 확대되었으며 고대의 말기인 후삼국시대 때는 도읍 입지의 양기풍수론까지 발달하게 되었다.
4. 고대 한국의 풍수사상은 형법(形法)위주의 강서지법(江西之法)이 유행하였다.
5. 고대 한국의 풍수사상은 수용자적 측면에서 불승(佛僧)들에게 제일 먼저 수용 보급되었으며 후삼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지방의 여러 호족들에게 전파되었다.
③ 공간적 특성
-공간적 전개 양상으로서 대공간(大空間)풍수지리에서부터 음택풍수의 소공간(小空間) 풍수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2) 고려시대의 풍수사상
① 이론적 특성
1. 고려 시대의 풍수사상은 이미 삼국시대때부터 전래되어 있었던 도참 및 점복사상등과의 습합기(習合期)였다.
2. 풍수이론 중에서는 왕권을 연장하기 위한 양기풍수(도읍 및 궁궐)가 탁월하게 발달하였으나 음택풍수도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 널리 행해졌다.
3. 고려 시대에는 아직까지 한학위주의 한문해독력이 급선무였던 만큼 승려와 유학자들 사이에 풍수지리가 많이 이해되고 있었으며 풍수사도 승려, 유학자, 관료풍수사 기타 풍수를 업으로 하는 사람 등 다양하였다.
4. 다양한 풍수사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으나 풍수 이론을 응용하여 한반도에 적용시킨 우리의 풍수서도 많이 저술되었다.
5. 풍수도참설의 성행에 못지않게 반풍수론도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
② 공간적 특성
1. 국역풍수, 지역풍수, 도읍풍수, 양택풍수, 음택풍수 등 공간규모별 모든 풍수지리가 전개 되었다.
2. 고려시대의 풍수지리는 공간적으로 행정구역변경 및 지명, 명호승강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3. 고려시대의 도읍풍수에는 도읍의 역사성, 풍수지리적 제조건의 구비 이외에도 순수한 현대 인문지리적인 입지요인이 많이 고려되었다.
(3) 조선시대의 풍수사상
① 이론적 특성
1. 고려시대의 풍수사상이 도참과 습합(習合)하여 풍수도참이었다면 조선시대에는 도참과 풍수지리가 분리되어 발전하였으며 풍수설의 수용계층의 저변화로 인하여 민중을 위한 길지낙토사상(吉地樂土思想)이 성행하였다.
2. 조선시대에는 세종조까지만 하더라도 집현전 학자들에게 풍수 특강까지 개설되어 발전을 꾀했으나 차츰 쇠약해져서 호국불교와 왕실을 위한 풍수가 결코 아닌 유교의 선조숭배 및 개인이나 가문의 안위와 성쇠를 점치는 음택풍수사상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3. 중국으로부터 각종 풍수서가 계속 전래되어 옴에 따라 각 서책에 나오는 새로운 지리학설이 끊임없이 대두되어 이론적인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논쟁이 거듭되어 일관성이 없었다.
4. 한국적 풍수이론이 태동되었다.
5.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도 반풍수론이 전개되었다.
② 공간적 특성
1. 음택풍수가 특히 발달하여 왕릉의 조영 뿐만 아니라 중엽이후에는 사대부들의 종산(宗山)형성이 전국에 걸쳐서 묘산을 점유하는 양상을 가져왔으며 평민 계층도 이에 합세하여 각종 묘지 범죄가 발생하였다.
2. 지리적 정보의 확대로 인하여 풍수론이 동북아 지역으로 확대,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양기 및 음택풍수론이 전개되었다.
3. 임진, 병란 양란 이후의 사회적 혼란기에 나타난 십승지와 같은 풍수설에 의해 상당한 규모의 인구 이동이 일어나기도 한 반면 풍수지리설로 인하여 사람들의 공간적 이동에 제한이 가해지기도 했다.
4. 선조 숭배와 효도 관념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 사회에서 상주와 풍수사들의 공간 활동은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다.
(4) 일제 식민지 시대의 풍수사상
① 이론적 특성
1. 단맥(斷脈)풍수론이 특히 발달하였는데 이는 일제의 한민족 정신 및 문화를 말살하려는 책략에 기인한 것이다.
2. 일제시대에는 생산력 상승과 더불어 신분상의 제약이 사라져 집짓는 인구가 폭발하게 됨으로써 양택(陽宅)풍수론이 필요한 시기였다.
3. 일제시대의 풍수사상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비해 왕설의 몰락에 편승하여 완전히 개인 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으나 일제의 탄압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풍수사상의 침체기였다고 볼 수 있다.
② 공간적 특성
1. 일제의 단맥풍수행위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는 것이다.
2. 한반도 풍수형국론(토끼 형국과 호랑이 형국)과 같이 일제의 동북아 용맥의 조종론에서 나타나는 자민족 중심주의적 풍수해석이 국토 공간에 적용되었다.
3. 일제의 억압을 피하여 종전의 비기도참서에 나타나는 길지를 찾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하였다.
(5) 현대 한국의 풍수 사상
① 이론적 특성
1. 서구 과학주의와의 이론적 습합(習合) 및 변용이 활발히 되고 있었다.
2. 풍수이론의 분화 현사을 들 수 있다.
3. 풍수사들의 수가 계속적으로 증가하여 1990년도 경우 일만 수천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풍수사들의 학회 및 조합 같은 것이 결성되어 풍수사들은 이제 하나의 뚜렷한 사회 집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4. 풍수지리설 수용자적 측면에서 풍수사상은 대중들의 마음 속에 이중적으로 의식화되어 있다.
즉 일상생활에서는 풍수사상을 미신이라고 반박하다가도 막상 본인이 상을 당하든가 하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풍수사를 동원하는 것이다.
② 공간적 특성
1. 지리적 정보의 확대로 인하여 풍수 이론의 공간적 적용 범위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2. 대공간의 풍수가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 양, 음택의 소공간 풍수에 치중해 있다.
3. 특정 지역에 용해되어 있는 풍수지리적 의미는 외부관찰자의 객관적인 시각에는 결코 포함되지 않는 생활 세계의 기층으로 침전되어 지역술사나 지역연구자 혹은 지역원로들에게만 주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4. 현대의 풍수사들은 풍수술의 상업화를 배경으로 하여 공간 생활을 하고 있다.
5. 풍수사상 수용자적 측면에서 묘지 명당 탐색의 공간적 범위 및 조성 면적에 빈부차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1) 고대의 풍수지리사상
① 한국 풍수사상의 기원
한국 풍수사상의 기원에 대한 설은 크게 양분화 되는데 하나는 한국 자체발생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으로부터의 도입설이다.
먼저 자체풍수발생설은 상고시대의 한 민족도 타민족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의 생활상의 요구로부터 적당한 토지의 선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당나라에서 풍수설이 도입되기 전에 이미 풍수설이 존재하였다고 주장한다.
중국으로부터의 도입설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로 나누어 말한다.
현존하는 문헌 중 풍수지리설의 존재를 입증하는 최초의 기록인 숭복사비문을 근거로 하여 풍수사상이 신라통일 이후 당과의 문화적 교류가 빈번하던 때에 비로소 전래된 것으로 보았다.
한국 풍수사상의 전설적인 원조는 옥룡자 도선(827-898 A.D)을 꼽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 풍수설이 도입된 것으로 본다.
② 이론적 특성
1. 중국에서 도입된 풍수사상이 고래(古來)의 한민족 전통사상과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2. 고대의 한국 풍수사상은 풍수사상과 도참사상이 각기 나름대로의 길을 가며 달랐다는 점이다.
3. 고대의 한국 풍수사상은 제일 먼저 사찰 입지의 양기풍수론에서 출발하여 선승들의 부도지 선정 및 왕릉의 조영과 관련된 음택풍수까지 확대되었으며 고대의 말기인 후삼국시대 때는 도읍 입지의 양기풍수론까지 발달하게 되었다.
4. 고대 한국의 풍수사상은 형법(形法)위주의 강서지법(江西之法)이 유행하였다.
5. 고대 한국의 풍수사상은 수용자적 측면에서 불승(佛僧)들에게 제일 먼저 수용 보급되었으며 후삼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지방의 여러 호족들에게 전파되었다.
③ 공간적 특성
-공간적 전개 양상으로서 대공간(大空間)풍수지리에서부터 음택풍수의 소공간(小空間) 풍수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2) 고려시대의 풍수사상
① 이론적 특성
1. 고려 시대의 풍수사상은 이미 삼국시대때부터 전래되어 있었던 도참 및 점복사상등과의 습합기(習合期)였다.
2. 풍수이론 중에서는 왕권을 연장하기 위한 양기풍수(도읍 및 궁궐)가 탁월하게 발달하였으나 음택풍수도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 널리 행해졌다.
3. 고려 시대에는 아직까지 한학위주의 한문해독력이 급선무였던 만큼 승려와 유학자들 사이에 풍수지리가 많이 이해되고 있었으며 풍수사도 승려, 유학자, 관료풍수사 기타 풍수를 업으로 하는 사람 등 다양하였다.
4. 다양한 풍수사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으나 풍수 이론을 응용하여 한반도에 적용시킨 우리의 풍수서도 많이 저술되었다.
5. 풍수도참설의 성행에 못지않게 반풍수론도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
② 공간적 특성
1. 국역풍수, 지역풍수, 도읍풍수, 양택풍수, 음택풍수 등 공간규모별 모든 풍수지리가 전개 되었다.
2. 고려시대의 풍수지리는 공간적으로 행정구역변경 및 지명, 명호승강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3. 고려시대의 도읍풍수에는 도읍의 역사성, 풍수지리적 제조건의 구비 이외에도 순수한 현대 인문지리적인 입지요인이 많이 고려되었다.
(3) 조선시대의 풍수사상
① 이론적 특성
1. 고려시대의 풍수사상이 도참과 습합(習合)하여 풍수도참이었다면 조선시대에는 도참과 풍수지리가 분리되어 발전하였으며 풍수설의 수용계층의 저변화로 인하여 민중을 위한 길지낙토사상(吉地樂土思想)이 성행하였다.
2. 조선시대에는 세종조까지만 하더라도 집현전 학자들에게 풍수 특강까지 개설되어 발전을 꾀했으나 차츰 쇠약해져서 호국불교와 왕실을 위한 풍수가 결코 아닌 유교의 선조숭배 및 개인이나 가문의 안위와 성쇠를 점치는 음택풍수사상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3. 중국으로부터 각종 풍수서가 계속 전래되어 옴에 따라 각 서책에 나오는 새로운 지리학설이 끊임없이 대두되어 이론적인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논쟁이 거듭되어 일관성이 없었다.
4. 한국적 풍수이론이 태동되었다.
5.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도 반풍수론이 전개되었다.
② 공간적 특성
1. 음택풍수가 특히 발달하여 왕릉의 조영 뿐만 아니라 중엽이후에는 사대부들의 종산(宗山)형성이 전국에 걸쳐서 묘산을 점유하는 양상을 가져왔으며 평민 계층도 이에 합세하여 각종 묘지 범죄가 발생하였다.
2. 지리적 정보의 확대로 인하여 풍수론이 동북아 지역으로 확대,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양기 및 음택풍수론이 전개되었다.
3. 임진, 병란 양란 이후의 사회적 혼란기에 나타난 십승지와 같은 풍수설에 의해 상당한 규모의 인구 이동이 일어나기도 한 반면 풍수지리설로 인하여 사람들의 공간적 이동에 제한이 가해지기도 했다.
4. 선조 숭배와 효도 관념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 사회에서 상주와 풍수사들의 공간 활동은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다.
(4) 일제 식민지 시대의 풍수사상
① 이론적 특성
1. 단맥(斷脈)풍수론이 특히 발달하였는데 이는 일제의 한민족 정신 및 문화를 말살하려는 책략에 기인한 것이다.
2. 일제시대에는 생산력 상승과 더불어 신분상의 제약이 사라져 집짓는 인구가 폭발하게 됨으로써 양택(陽宅)풍수론이 필요한 시기였다.
3. 일제시대의 풍수사상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비해 왕설의 몰락에 편승하여 완전히 개인 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으나 일제의 탄압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풍수사상의 침체기였다고 볼 수 있다.
② 공간적 특성
1. 일제의 단맥풍수행위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는 것이다.
2. 한반도 풍수형국론(토끼 형국과 호랑이 형국)과 같이 일제의 동북아 용맥의 조종론에서 나타나는 자민족 중심주의적 풍수해석이 국토 공간에 적용되었다.
3. 일제의 억압을 피하여 종전의 비기도참서에 나타나는 길지를 찾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하였다.
(5) 현대 한국의 풍수 사상
① 이론적 특성
1. 서구 과학주의와의 이론적 습합(習合) 및 변용이 활발히 되고 있었다.
2. 풍수이론의 분화 현사을 들 수 있다.
3. 풍수사들의 수가 계속적으로 증가하여 1990년도 경우 일만 수천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풍수사들의 학회 및 조합 같은 것이 결성되어 풍수사들은 이제 하나의 뚜렷한 사회 집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4. 풍수지리설 수용자적 측면에서 풍수사상은 대중들의 마음 속에 이중적으로 의식화되어 있다.
즉 일상생활에서는 풍수사상을 미신이라고 반박하다가도 막상 본인이 상을 당하든가 하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풍수사를 동원하는 것이다.
② 공간적 특성
1. 지리적 정보의 확대로 인하여 풍수 이론의 공간적 적용 범위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2. 대공간의 풍수가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 양, 음택의 소공간 풍수에 치중해 있다.
3. 특정 지역에 용해되어 있는 풍수지리적 의미는 외부관찰자의 객관적인 시각에는 결코 포함되지 않는 생활 세계의 기층으로 침전되어 지역술사나 지역연구자 혹은 지역원로들에게만 주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4. 현대의 풍수사들은 풍수술의 상업화를 배경으로 하여 공간 생활을 하고 있다.
5. 풍수사상 수용자적 측면에서 묘지 명당 탐색의 공간적 범위 및 조성 면적에 빈부차가 극심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