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청량음료인 코카콜라는 한 약사의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1886년 떼돈을 모을 만병통치약 제조에 미쳐 있던 미국의 약제사 존 펨버턴이 어쩌다 만든 기분 전환용 음료다. 남북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한 펨버턴은 여러 가지 혼합액에 탄산수를 더해 만들었다. 그 못 보던 음료는 반년 만에 세인의 입맛을 바꾸어 놓을 만큼 폭발적 반응을 끌어냈다. 그러나 머잖아 코카의 중독성이 알려지면서 '코크' 또는 '도프'(dope·속어로 마약)라는 이름이 마치 애칭처럼 불리게 된다.

처음 이 음료수는 한 잔에 5센트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펨버턴의 회계 담당자였던 프랭크 로빈슨은 이 혼합물에 코카콜라라는 이름을 붙여 자신의 독특한 필체로 적었고 그 글자는 오늘날까지 그가 썼던 그대로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 코카콜라가 대중에게 선을 보인 첫해에 약 하루 9잔정도 판매됐지만 100년여가 흐른 지금 코카콜라는 일년에 거의 700억ℓ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존 펨버튼은 그가 만들었던 음료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1888년 사망했다. 애틀란타 사업가 애서 그릭 캔들러는 1887년에 펨버턴이 세운 회사를 2300달러에 샀다. 그는 1895년 시카고, 댈러스, 로스앤젤레스에 공장을 세우고 전국적으로 코카콜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코카콜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칭해 '소다 멍청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흰 모자와 흰 가운과 흰 치마를 입고 탄산 음료 한 잔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마라토너와 사이클 선수는 코카콜라 보증을 가장 먼저 한 선수들이다. 세계챔피언인 조지아 출신의 바비 워툴루는 1909년 코카콜라 신문광고에 첫 등장했다.

캔들러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코카콜라의 잠재성을 알지 못했다. 두 명의 변호사인 벤자민 F 토마스와 요셉 B 화이트헤드는 캔들러에게 코카콜라를 병에 넣어서 팔 수 있는 독점적인 권리를 팔았다. 그것도 단 돈 1달러에.

아시아에서 코카콜라의 첫 유리병 공장은 1912년 필리핀에, 유럽에서의 첫 유리병 공장은 1919년 프랑스에 준공됐다.

회사는 코카콜라와 모방음료의 진위에 관한 광고에 집중하기로 하고,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독특한 병 모양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1916년 오늘날 코카콜라의 서명이 남아 있는 유리병이 출시됐고 매력적인 외관, 독창적인 디자인은 진품을 식별할 수 있는 사실에 선정됐다.

코카콜라가 새로운 맛을 확장하는 데는 70년이나 걸렸다. 환타는 1940년대에 개발해서 1950년대에 소개됐으며 스프라이트는 1961년에, 탭은 1963년에, 1966년에는 프레스카가 뒤를 이었다. 이 회사는 현재 500개의 브랜드와 3300음료수라는 놀라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코카콜라의 마케팅이 한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코카콜라는 99년만에 처음으로 제조법을 변경하여 1985년에 '새로운 콜라'를 발표했다. 처음 테스트에 응한 사람들은 새로운 음료수의 풍미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으나 이내 소비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전량 회수하는 시련을 겪었다.

코카콜라의 상징인 북극곰은 '항상 코카콜라' 캠페인의 일환으로 1993년에 도입됐다.

< 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 장원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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